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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미술품으로 내는 ‘미술품 물납제’ 시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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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미술품으로 내게 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미술품 물납제’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발상이지만 영국·프랑스·일본 등 일찌감치 시행 중인 나라도 있다. 이전에도 일부 미술인들이 국내 도입을 주장해온 제도인데, 코로나19 이후 미술계가 전례 없는 불황에 빠지자 ‘구원투수’ 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미술품 물납제가 미술품 거래를 진흥하고 예술인들의 생계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곧 의원 입법도 나올 예정이다.
법적으로 조세의 기본원칙은 금전 납부다. 그런데 금전 이외의 재화로 세금을 내는 ‘물납’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다. 법령 요건에 맞는 부동산과 유가증권은 상속세·재산세로 납부할 수 있다. 2007년 헌법재판소는 조세 물납 조항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액이 다액이고 부동산 등 처분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재산에 관한 (…) 납세자의 어려움을 덜어줌과 동시에 세수입의 확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채택하고 있다(2006헌바49).” 재산이 적은 사람이 갑자기 고액의 부동산을 상속받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금을 금전으로만 납부해야 한다면 당장 유용할 돈이 없는 상속인은 손해를 감수하고 재산을 팔아치우거나 기한을 넘겨 세금을 체납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부동산을 세금으로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물납제도다.
미술품 역시 “처분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물품이다. 공산품과 달리 미술품은 ‘시가’가 없다. 판매용 미술품은 작가 본인이 정한 판매가(장부가액)에 따라 과세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국세청이 위촉한 전문가들이 평가한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52조).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술품의 가치 평가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심지어 작품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진다. 다수 전문가들이 엇비슷한 평가를 매긴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남는다. 미술품을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그 평가액에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미술시장은 수요의 풀이 얕다. 값비싼 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에 돈을 지불하려는 이는 한정적이다. 세금을 내기 위해 미술품을 조기에 처분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기 쉽다.
상속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진 대표 사례로 2014년 타계한 김흥수 화백의 일이 거론된다. 김흥수 화백은 ‘하모니즘 회화’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대가다. 국세청은 김 화백 유작의 과세표준 감정액을 총 110억원가량으로 매겨 상속세 48억원을 부과했다. 유족은 상속세를 납부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작품 일부를 판매해 흩어지게 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결국 2017년 한 재단에 유작 70여 점을 기증했다. 이들은 “재단 이사장이 미술관을 건립하는 게 기증 조건이었다”라고 주장하며, 1년 뒤 이를 이행하지 않은 재단을 고소했다. 재단 이사장은 “조건 없는 무상 증여였다”라며 맞섰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범헌 회장은 “조세 물납 대상에 미술품이 들어 있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됐을 문제다. 김흥수 화백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 유족 가운데에는 (세금 납부를 위해) 작품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이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미술인의 복지나 유가족의 납세 편의보다는 예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고 국민의 예술 향유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다. 예컨대 영국 미술품 물납제 소관 기구인 예술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국가적 중요 자산이 공익을 위해, 영국 내에 보존되도록” 하는 게 제도 목적이라고 밝힌다. 까다로운 조건 아래 운영 중인 미술품 물납제는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68년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1470만 유로(약 200억원)에 달하는 수집품을 확보했다. 1985년 완공된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미술품 물납제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파블로 피카소 사후 유가족이 상속세 대신 작품 수천 점을 납부하자 프랑스 정부가 설립·운영하게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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